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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음에는 부처가 없다.
작성자 초의차 (ip:59.5.74.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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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23-07-12 09: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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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17

견성(見性) - 마음을 보다 133.

 

마음에는 부처가 없다.

 

마음에는

본성과 작용만 있다.

 

마음은,

아무것도 없다.

이름도 없다.

 

마음은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이름이 없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이름을 붙였다.

 

본 사람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

 

내 이름처럼,

아무 의미가 없다.

 

내 이름도

남과 구별을 하기 위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부처도

이름이다.

 

깨달은 사람에게

붙이는 존칭이다.

 

그러므로,

본래 있는 이름이 아니다.

 

석가모니도,

부처는 아니었다.

 

후에 사람들이

붙인 존칭이다.

 

마음이라는 이름도,없고,

부처도,없다.

 

생각일 뿐이다.

사람들의 생각일 뿐이다.

 

부처만 없는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없다.

 

()도 없고,

하나님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모두가 붙여진 이름이다.

거짓된 이름이다.

 

그런데 우리는,

있다고 생각한다.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착각(錯覺),

삶을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착각이,

분별을 만들고 있다.

 

이러한 착각이,

시비(是非)를 만들고 있다.

 

이러한 착각이,

혼란을 만들고 있다.

 

이러한 착각이,

맹신(盲信)을 부르고 있다.

 

이러한 착각이,

다툼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착각이,

차별을 만들고 있다.

 

이러한 착각이,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

 

모든 것은,

착각에서 비롯되었다.

 

모든 것은,

무지(無知)에서 비롯되었다.

 

모든 것은,

무명(無明)에서 시작되었다.

 

모든 것은,

무식(無識)에서 시작되었다.

 

모든 것은,

모두 이와같다.

 

다투지 마라

괴로울 뿐이다.

 

착각에서 깨어나는 것이

견성이다.

 

혼돈에서 깨어나는 것이,

견성이다.

 

무지에서 깨어나는 것이

견성이다.

 

무명에서 께어나는 것이

견성이다.

 

자아에서 깨어나는 것이

견성이다.

 

모든 것이 평온해지면

알게 될 것이다.


2023년 7월 10일.


고월 용운합장.




견성(見性) - 마음을 보다 132.

 

일상적 체험은 남과 공유한다.

 

일상 체험은,

내가 하지만남과 공유할 수가 있다.

 

남과 공유하기 때문에,

남의 체험이 되기도 한다.

 

일상 체험은,

내 눈에도 보이고,

남의 눈에도 보인다.

 

일상 체험은,

내 귀에도 들리고,

남의 귀에도 들린다.

 

일상 체험은,

내가 느낄수 있고,

남도 느낄수 있다.

 

일상 체험은,

내 것이 되기도 하고,

남의 것이 되기도 하다.

 

일상 체험은,

공유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일상 체험은,

공유를 할 때,

그 가치가 더 크다.

 

일상 체험은,

독점을 할 수가 없다.

모두 드러나기 때문이다.

 

일상 체험은,

나의 삶이 되기도 하고,

인류의 삶이 되기도 한다.

 

일상 체험은,

인류가 공유하는

지식으로 전해진다.

 

일상 체험은,

진화를 하면서,

발전을 거듭한다.

 

일상 체험을 통해서,

인류는 소통을 한다.

 

일상 체험은,

지식으로 기록되고,

역사가 된다.

 

일상 체험이,

개인적인 삶의 족적이 되고,

공동체의 역사가 된다.

 

인간은,

일상 체험을 통해서,

삶을 유지해 나간다.

 

인간은,

일상 체험을 통해서,

생로병사(生老病死)를 경험해 간다.


인간은,

일상 체험을 통해서,

일생을 살아간다.

 

인간은,

일상 체험을 통해서,

자기를 만들어 간다.

 

인간은,

일상 체험을 통해서,

자아를 완성해 간다.

 

인간은,

일상 체험을 통해서,

공동체를 이루어 간다.

 

인간은,

일상 체험을 통해서,

삶의 가치를 창출해 간다.

 

인간은,

일상 체험을 통해서,

모든 것을 만들어 간다.

 

이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인간에게,

일상 체험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오직 일상 체험 하나뿐이다.

 

그러나,

아주 특별한 체험이 있다.

 

이것이,

견성 체험이고,

깨달음 체험이다.

 

이러한

특별한 체험을 한 사람은,

매우 적다.

 

세상에서,

찾아보기가 어렵다.

 

견성한 사람이나,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거의 없다.


2023년 7월 8일.


고월 용운합장.



견성(見性) - 마음을 보다 131.

 

삶은 체험(體驗)이다.

 

체험한 것만,

삶이 된다.

 

매일매 순간,

체험한 것들이

모두 삶이 된다.

 

생각만 하고,

체험하지 않은 것은,

모두 사라진다.

 

체험이 되지 않은 생각은,

삶이 되지 않는다.

 

생각은,

행동으로 옮겨져야만,

삶이 된다.

 

생각이 삶이 되는 것을

일상적 체험이라고 한다.

 

일상적 체험은,

오관(五官)이 작동하고,

수상행식(受想行識)이 작용을 한다.

 

일상적 체험은,

오관과 수상해식이

작용을 하기 때문에

희로애락(喜怒哀樂)이 함께 생긴다.

 

일상적 체험은

희로애락을 느끼면서

체험을 동시에 한다.

 

삶이 되는

일상적 체험은,

희로애락을 동반한다.

 

희로애락은,

일상적 체험을 통해서,

만들어 진다.

 

그래서삶은

희로애락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견성의 체험은,

희로애락이 없다.

 

오관이 작동하지 않고,

수상행식이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깨달음의 체험도,

희로애락이 없다.

 

오관이 작동하지 않고,

수상행식이 작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견성의 체험에는

희로애락이 없지마는,

 

깨달음의 체험에는,

환희와 희열이 있다.

 

희로애락은 없지마는,

절정의 환희와 희열이 있다.

 

이점이

일상적 체험과,

견성이나 깨달음의 체험이 다르다.

 

견성이나깨달음이나,

모두 체험이기 때문에,

삶이 되지만,

 

매우 특별한 체험이다.

 

오관이 작동하면,

견성을 할 수가 없고,

 

수상행식이 작용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같은 체험이라고 해도,

 

오관이 작동하거나

수상행식이 작용을 하고,

안하는 것이 다르다.

 

삶은

오관이 작동을 해서,

몸으로 느낄 수 있고,

 

삶은,

수상행식이 작용을 해서,

마음으로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견성의 체험이나,

깨달음의 체험은,

 

희로애락을 느낄 수 없다.

 

삶의 체험은,

저절로 이루어지지만,

 

견성의 체험이나,

깨달음의 체험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각고의 수행이 있어야만,

견성 체험을 할 수 있고,

 

목숨을 건 고행이 있어야만,

깨달음 체험을 할 수가 있다.

 

생각은,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일어나고,

 

일상적 체험은,

힘들이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진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이다.

 

일상(日常)이다.


2023년 7월 6일.


고월 용운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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