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상품목록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현재 위치
  1. 게시판
  2. 갤러리

갤러리

갤러리입니다.

게시판 상세
제목 의식이 무상(無常)을 깨달아야 안다.
작성자 초의차 (ip:59.5.74.169)
  • 평점 0점  
  • 작성일 2023-08-17 10:18:18
  • 추천 추천하기
  • 조회수 113

견성(見性) - 마음을 보다 149.

 

의식은 부처가 아니다.

 

()도 아니다.

성인(聖人)도 아니다.

도인(道人)도 아니다.

 

마음도 아니다.

생각도 아니다.

 

마음의 작용일 뿐이다.

 

불성(佛性)도 없다

 

의식이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의식이

()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의식이

성인(聖人)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의식이

도인(道人)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의식이,

군자(君子)가 되는 것이 아니다.

 

부처란

남의 생각일 뿐이다.

 

부처라고 생각하는

남의 생각이 부처다.

 

()이라고 생각하는

남의 생각이 신이다.

 

도인(道人)이라고 생각하는,

남의 생각이 도인이다.

 

군자(君子)라고 생각하는,

남의 생각이 군자이다

 

이 모든 것은,

남의 생각일 뿐이다.

 

성인도

남의 생각이고,

 

군자도,

남의 생각이고,

 

착한 사람도

남의 생각이고,

 

악한 사람도,

남의 생각이고,

 

좋은 사람도,

남의 생각이고,

 

나쁜 사람도,

남의 생각이고,

 

어진 사람도,

남의 생각이고,

 

부처님도

남의 생각이고,

 

보살님도

남의 생각이고,

 

모두가 다,

남의 생각일 뿐이다.

 

내가 부처님이다 라고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부처님은 없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신병자이다.

 

남이 부처님 같은 사람을

부처님이라고 부른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스스로 자기가 부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공자님은 스스로,

자가가 성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스스로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신은 스스로,

자기가 신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모두가

남의 생각일 뿐이다.

 

진정한 부처님은,

진실한 사람들이 만든다.

 

진정한 성인은,

성실한 사람들이 만든다.

 

진정한 하나님은,

독실한 사람들이 만든다.

 

이 모두가,

다른 사람들이 만든 것이다.

 

자기 안에는,

부처도 없고,

 

자기 안에는,

하나님도 없고,

 

자기 안에는

()도 없고,

 

자기 안에는

성인(聖人)도 없고,

 

자기 안에는

군자(君子)도 없다.

 

오직

텅 비어 아무것도 없다.


2023년 8월 16일.


고월 용운합장.



견성(見性) - 마음을 보다 148.

 

의식이 무상(無常)을 깨달아야 안다.

 

천안이

만물의 공성(空性)을 보고,

공각(空覺)을 깨닫게 되면,

 

의식이

무상(無常)을 깨닫게 된다.

 

의식이,

무상을 깨닫게 되면,

만물이 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만물이 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저절로 집착이 떨어진다.

 

만물에 집착이 떨어지게 되면,

저절로 자유롭게 된다.

 

반드시,

무상을 깨달아야만 한다.

 

무상을 깨닫지 못하면,

집착이 떨어지지 않는다.

 

반드시,

무상을 깨달아야 한다.

 

만물의 무상을 깨닫게 되면,

저절로 집착이 떨어지게 되고,

 

저절로 집착이 떨어지면,

저절로 부질없음을 알게 되고,

 

저절로 부질없음을 알게 되면,

저절로 자유로워진다.

 

저절로 자유롭게 되면,

저절로 걸림이 없게 되고,

 

저절로 걸림이 없게 되면,

저절로 편안하게 된다.

 

저절로 편안하게 되면,

저절로 힘들이는 것이 없게 된다.

 

저절로 힘들이지 않으면,

저절로 삶이 이루어진다.

 

저절로 삶이 이루어지면,

저절로 살아진다.

 

저절로 살아지면,

저절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삶이란 이런 것이다.

 

힘들이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

 

본시,

인간의 삶이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의식이 주관한다.

 

의식이 천안을 통해

무상을 깨달아 아는 것이다.

 

의식이

무상을 깨달아 알아서

만물이 상주(常住)하지 않음을 보고,

만물이 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이것이,

무상의 깨달음이다.

 

만물은 항상 변화하고,

만물은 항상 바뀌어서,

 

한 순간도,

머무는 바가 없다.

 

한 순간도

멈추는 바가 없다.

 

한 순간도,

똑 같은 바가 없다.

 

한 순간도,

똑 같은 것이 없다.

 

한 순간도,

영원한 것이 없다.

 

한 순간도,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한 순간도,

멈추는 것이 없다.

 

이것이 무상의 도리이다.

이것이 무상의 이치이다.

이것이 무상의 법칙이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이것이 세상의 법도이다.

이것이 세상의 섭리이다.

 

이것이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이다.

 

이것이,

지금 이 순간

내가 있는 곳이다.


2023년 8월 14일.


고월 용운합장.




견성(見性) - 마음을 보다 147.

 

의식이 천안(天眼)을 만들어 낸다.

 

천안은,

만물의 작용을 보고,

깨달음을 얻어야만 생긴다.

 

천안은

만물의 작용을 보고,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생기지 않는다.

 

천안은,

반드시 만물의 작용을 깨달아야만 생긴다.

 

천안은,

혜안이 열리고,

법안이 열리고,

세 번째로 열리는 눈이다.

 

천안이 열려야

우주 삼라만상의 현상과 실상을 볼 수가 있다.

 

천안이 열려야,

만물의 실상을 볼 수가 있다.

 

천안이 열려야,

만물의 현상을 볼 수가 있다.

 

천안이 열려야,

만물의 공성(空性)을 볼 수가 있다.

 

천안이 열려야,

만물이 모두 공한 것을 볼 수가 있다.

천안이 열려야,

사물 하나하나가 모두 공한 것을 볼 수가 있다.

 

천안이 열려야,

사물의 공성을 볼 수가 있다.

 

천안이 열려야,

사물이 모두 공한 것을 볼수가 있다.

 

천안이 열려야,

우주 삼라만상이 모두 공한 것을 볼 수가 있다.

 

천안이 열려야,

만물의 실상이 공한 것을 볼 수가 있다.

 

천안이 열려야,

만물의 현상이 모두 공한 것을 볼 수가 있다.

 

천안이

만물의 공()함을 보고

만물의 공성(空性)을 알아차릴 수가 있다.

 

천안이

만물의 공성을 보고

공성을 알아차리는 것이 깨달음이다.

 

천안이,

만물의 공성을 깨닫는 것이다.

 

천안이

만물의 공성을 깨닫게 되면,

무상을 이치를 알게 된다.

 

천안이,

무상의 이치를 깨닫게 되면,

만물이 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천안이,

무상을 깨닫게 되면,

만물이 부질없음을 알게 된다.

 

천안이

만물의 부질없음을 알게 되면,

만물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

 

천안이,

무상을 깨닫게 되면,

일체 집착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일체 집착이 떨어지면,

비로소 자유로운 사람이 된다.

 

대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더 이상

이 세상에 집착할 것이 없다.

 

더 이상,

이 세상에 걸림이 없게 된다.

 

더 이상,

이 세상에 미련을 둘 일이 없다.

 

천안은,

세상을 두루 보는 눈이다.

 

육안(肉眼),

빛으로 세상을 보는 눈이지만,.


천안은,

빛으로 세상을 보지 않는다.

 

천안은,

직관(直觀)으로 세상을 본다.

 

천안은,

만물의 본성도 보고,

만물의 작용도 보고,

삼라만상도 본다.

 

천안은,

혜안이나법안처럼,

직관으로 세상을 본다.

 

그러나,

만물의 현상과,

실상을 모두 본다.

 

천안은,

만물의 하나하나의

본성과 작용실상과 현상,

모두를 본다.

 

천안이 두루 통하면,

천안통이 열리는 것이다.

 

천안은,

깊고 오묘한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

 

천안은,

무상의 문을 여는 눈이다.

 

천안은,

확철대오의 길을 연다.

 

천안은,

공각(空覺)을 이루는 눈이다.

 

공각이

마지막 깨달음이다.

 

천안은,

항상 일용을 해야 한다.

 

육안으로,

세상을 보지 말고,

천안으로 세상을 보라,

 

육안으로 세상을 보면,

만물의 겉모습만 보고,

 

천안으로 세상을 보면,

만물의 실상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세상일에 속지 않는 길이다.


2023년 8월 12일.


고월 용운합장.



견성(見性) - 마음을 보다 146.

 

의식이 법안(法眼)을 만들어 낸다.

 

깨달음을 성취하고 나면,

비로소 법안이 열린다.

 

의식은 깨어 있고,

생각과 수상행식은 멈추고,

 

만물의 본성을 보고,

깨달음을 성취하고 나면,

 

비로소

법안이 열리게 되고,

만물의 작용을 보게 된다.

 

법안이란

()을 보는 눈이다.

 

만물의 작용은 법()이다.

 

법안은

만물의 작용인 법리(法理)를 보는 눈이다.

 

만물의 작용은,

만물이 생겨나는 원리(原理)이다.

 

만물이 생겨나는 섭리(攝理)이다.

 

만물이 생겨나는 법도(法道)이다.

 

이 원리는 하나이다.

 

우주의 삼라만상은

이 하나의 원리에서 나왔다.

 

이 원리를

참다운 이치라고 한다.

 

이 원리를,

()라고 한다.

 

이 원리를 보고,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이 원리를 보는 눈이 법안이다.

 

법안이 아니면,

이 원리를 볼 수가 없다.

 

오직 법안만이,

이 원리를 볼 수가 있다.

 

혜안도

이 원리를 보지 못한다.

 

오직 법안만이

이 원리를 볼 수가 있다.

 

이 법안은,

법성을 보고 깨달음을 얻어야만 생긴다.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법안은 생기지 않는다.

 

법안이 생기지 않으면,

만물이 생겨나는 원리를 볼 수가 없다.

만물이 생겨나는 원리는 하나다.

 

이 하나의 원리를 보는 것이

법안이다.

 

법안이 열리지 않으면,

만물의 작용을 볼 수가 없다.

 

법안은,

의식이 만든다.

 

혜안과 직관과 지혜와,

깨달음은 모두 의식에서 나온다,

 

법안과 천안과

공성을 깨달아 알아차리는 것이

모두 의식에서 일어난다.

 

공각(空覺)을 이루는 것도

의식에서 나온다.

 

의식은

견성과 깨달음을 이루는 주체이다.

 

법안은,

만물의 작용을 보고

알아차리는 눈이다.

 

법안이 없으면,

공성(空性)을 깨달을 수 없다.

 

법안은,

깨달음을 얻는 눈이다.

 

법안이 열리고,

만물의 작용을 보고,

 

만물의 작용이

텅 비어 있는 공성을

알아차리는 것이 깨달음이다.

 

만물의 작용을

깨닫고 나면,

천안(天眼)이 열린다.

 

천안은

우주 삼라만상을 보는 눈이다.


2023년 8월 7일.


고월 용운합장.


첨부파일 견성146~149.jpg
비밀번호 삭제하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댓글 수정

비밀번호 :

/ byte

비밀번호 : 확인 취소

댓글 입력
댓글달기 이름 : 비밀번호 : 관리자답변보기

영문 대소문자/숫자/특수문자 중 2가지 이상 조합, 10자~16자

/ byte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

회원에게만 댓글 작성 권한이 있습니다.



장바구니 0

맨위로